“웰빙은 아무나 하나?” 영조의 웰빙 라이프

“웰빙은 아무나 하나?” 영조의 웰빙 라이프

영조의 웰빙 라이프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 45세, 영조의 장수 비결은?

왕이 받았던 하루 5끼, 12첩 반상의 수라상

성인병에 시달린 조선 왕들

니들이 웰빙을 알아?

영조의 장수비결 첫번째.

세종은 육식주의자, 영조는 채식주의자

어전회의가 있을 때도 식사는 거르지 않은 영조

어전회의를 하다가도 식사 시간만은 지킨 영조

250년 전부터 혼식을 실천한 영조

영조는 현미와 콩, 잡곡을 섞은 밥을 먹었다.
영조는 활동량 높은 운동을 즐겼다.

영조는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인삼을 통해 건강을 관리했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한의학, 이것이 영조의 웰빙 라이프

 

 

조선시대 왕은 말 그대로 지존(至尊)이라고 할 수 있죠. 모든 행위에는 존칭이 붙었고, 심지어 부산물에도 예칭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조선시대 왕의 대변은 ‘매화’라고 불렸으며, 전용변기는 ‘매화틀‘이라 불렸고, 아울러 내의원 소속 의관들은 왕의 매화를 맛보며 왕의 건강을 체크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동 시 가마를 타는 일이 많아 걷는 것이 부족했으며(현대로 비유하면 걸음이 부족한 차량운전 직장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밥상은 12첩 반상의 수라상을 받았습니다. 끼니 역시 하루 세끼가 아닌 다섯끼를 먹었다고 하니 영양과다 상태가 아닌 게 더 이상하겠죠.

실제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5세 정도였습니다. 음식이며, 약이며…나라에서 가장 많은 케어(Care)를 받는 사람치고는 그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영양과다와 운동부족으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성인병에 왕들이 노출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대표적으로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은 육식을 즐긴 대식가였습니다. 그의 건강은 비만은 기본이며, 당뇨병·등창(종기)·두통·수전증 등 수십종의 각종 성인병으로 인한 고생으로 점철돼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승하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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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의 왕들 평균수명을 훨씬 상회하고, 현대 평균수명에 비춰 봐도 못지않게 천수를 누리다 간 왕도 있습니다. 바로 탕평책으로 잘 알려진 제21대 조선의 국왕 영조입니다.

 

재위기간 1위, 장수 1위, 영조의 비결이 궁금하다

영조는 왕위에 올라 무려 52년간 나라를 다스리며 조선의 역대 왕 중 가장 긴 통치기간을 자랑했습니다. 게다가 향년 83세로 역대 조선의 왕 중 가장 장수한 왕으로도 첫 손에 꼽힙니다.

그리고 여타 왕들이 대개 질환으로 승하한 것과 달리 말 그대로 노환으로 승하, 호상(好喪)이라 할 만한 죽음을 맞이한 왕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조의 건강한 장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비결은 그의 생활습관에서 쉽게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조선시대 왕들은 만성적 영양과잉과 운동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따라서 각종 성인병에 쉽게 노출되는, 가장 관리 받는 사람이 가장 질병에 잘 노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죠.

영조의 장수비결은 여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건강악화의 주범인 영양과잉과 운동부족을 잡아낸 것입니다.

 

식사시간 되면 어전회의도 STOP

영조는 채식(菜食)주의자이자 소식(小食)주의자였습니다. 우선 영조는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그마저도 채식 위주로 식단을 꾸릴 것을 지시하고, 이를 섭취해 과도한 지방섭취를 피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하루 다섯 번의 수라상을 세 번, 즉 하루 세끼로 줄이기도 했는데요, 이것이 장수의 첫 번째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조는 식사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규칙적인 식사는 현대인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습관 중 하나로 꼽히지만, 바쁜 일과에 쫓기다 보면 지키기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왕에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바쁘지 않았을 리는 없었을 터, (실제 조선시대 왕들은 어느 누구보다 과도한 업무량을 소화했습니다. 좋지 않은 생활습관과 더불어 조선 왕들의 단명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과로와 스트레스입니다.) 따라서 규칙적인 식사를 지키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영조는 중요한 어전회의를 하다가도 식사시간은 속된 말로 칼같이 지켰습니다. 밥 때가 되면 회의를 멈추고 식사를 한 뒤 다시 진행할 정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적게 먹더라도 끼니를 거르는 일은 절대 없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생활을 하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보충이 필요한데, 영조는 거르지 않고 규칙적인 식사를 함으로써 에너지를 보충하고 건강을 챙겼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비결입니다.

 

‘혼식’을 250년 전부터 실천했던 영조

세 번째 비결은 혼식이었습니다. 흰쌀밥 즉, 백미밥을 고봉(高捧)으로 먹는 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의 특징처럼 여겨져 왔던 것은 고금을 둘러봐도 동일한 인식인데요, 다만, 20세기 들어 현미나 보리, 조 등 잡곡을 섞어 혼식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이를 권장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조는 이미 이런 잡곡 혼식을 17세기 조선시대에서 실천했습니다. 기존의 왕의 수라에 오르던 백미밥 대신, 현미와 콩 등 잡곡을 섞은 밥을 채식위주의 식단과 함께 먹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소식으로 말입니다.

특히 현미는 오늘날 대표적인 건강주식으로 꼽히는데, 각종 무기질 등 영양소가 풍부해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조의 식성과 고추장 사랑

건강한 식단에 운동까지, 더할 나위 없는 웰빙 라이프

마지막 장수 비결은 바로 운동을 즐겨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조선의 왕들은 일반 궁정업무처리가 많아 개인적으로 운동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은 무예와 같은 운동은 기본 소양정도로만 익히고 경학(經學) 공부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특히 왕이라면 모범을 보여야 했으니 더 철저히 지켜야 했겠죠.

그렇지만 영조는 타고나길 운동을 좋아해 승마, 달리기, 활쏘기 등 활동량이 높은 운동을 즐겨했습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채식위주의 식단, 소식.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 영조가 재위기간 동안, 살아있는 동안 큰 병치레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영조가 태어나기를 건강하게 태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민감성 체질로 배탈도 자주 나고, 소화불량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영조 스스로 자신의 몸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이를 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통해 극복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겠죠.

여기에 한랭성 질환을 앓는 자신의 체질에 맞는 한약과(영조는 대표적인 인삼 마니아였습니다. 인삼은 열성의 약재라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으며, 실제 영조의 손자 정조는 인삼으로 인해 몸을 버렸습니다.) 뜸치료, 침치료 등을 받아 철저한 자기관리를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영조의 삶을 요즘말로 풀어보면 웰빙 라이프를 살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웰빙(Well-Being)’. 십년도 전부터 화두였던 이 말은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웰빙을 위해 친환경 소재의 제품을 쓰고, 입고, 건강보조식품을 챙겨먹곤 합니다.

그렇지만 먼저 내게 필요한 것인지, 내게 맞는 것인지, 가장 기본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인 밥상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체질을 바르게 알고 그에 맞는 음식과 한약을 섭취하는 것 말입니다.

바로 이것에서부터 ‘무병백세(無病百歲)’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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