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송시열이 말합니다, “여기 사약 한사발 추가요”

[역사 속 건강] 우암 송시열이 말합니다, “여기 사약 한사발 추가요”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은 남자, 우암 송시열의 건강유지 비결은 무엇일까요?

사약은 '죽는 약'이 아니라 '왕이 하사해주는 약'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약을 먹고도 멀쩡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조선 후기 성리학의 거두였던 우암 송시열은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았습니다

송시열의 건강 비결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것

송시열의 건강비결은 평소 소식했고, 야식도 먹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송시열은 술과 여자를 멀리했다고 합니다.

송시열은 평소 구기자와 국화를 차로 마셔서 몸의 정기를 회복시켰습니다.

송시열은 구기자와 국화를 함께 넣어 만든 기국차를 즐겼습니다.

송시열은 사약을 세 사발이나 먹고나서야 죽을 수 있었습니다

송시열은 평소 한의학에 조예가 깊어 철저한 건강관리가 가능했습니다.

무병장수를 위해서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죄인은 사약을 들라!”

조선은 사형 제도​가 운영되었던 나라였으며 다양한 사형 방식이 존재했는데, 그중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 바로 사약이었습니다. 이 말이 어불성설처럼 들리겠지만, 다른 사형 방식에 비해 신체를 온전히 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점에서 상대적으로 인간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유학)의 나라였고,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즉, 부모가 물려준 신체를 온전히 유지하는 것을 최상위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사약을 통한 죽음은 나름 죄인을 존중하는 사형 제도였던 셈입니다. 그렇기에 사약형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신체의 훼손이 발생하는 다른 여타의 사형법인 참형(斬刑)이나 능지처참형(陵遲處斬刑)과 달리 온전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양반 이상의 사대부 계층에서나 받을 수 있던 사형법이 바로 사약형이었습니다.

아울러 조선시대 사약을 내리는 주체는 바로 왕이었습니다. 흔히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사약은 ‘죽는 약’이라는 의미의 사약(死藥)이 아닌 ‘내려주는 약’이라는 의미의 사약(賜藥)입니다. 이 때문에 사약을 받을 때는 한성, 그러니까 왕이 있는 방향을 향해 사약을 내려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사직의 절을 하고 받았습니다. 물론 이름이야 어쨌든 간에, 결국 마시면 죽는 약이 바로 사약인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한 사발로 모자라고, 두 사발도 부족해, 세 사발을 마시고 나서야 죽었던 그 주인공은 바로 조선 중후기 유학의 거두였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입니다.

송시열, 병(病) 몰라요. 병(病), 송시열 못이겨요.

중후기 조선을 가리켜 ‘송시열의 나라’라 일컬었을 정도로, 송시열의 영향력은 ‘대궐 밖 임금’에 비할만큼 막강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송시열은 인조부터 숙종까지 네 명의 왕을 걸쳐 봉직했고, 초거대 정당이었던 노론의 영수로서 막강한 실력자였죠.

아울러 4명의 왕을 섬겼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송시열은 매우 장수한 인물인데, 무려 83세까지 살았습니다. 참고로 조선에서 최고급 케어를 받았을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약 46.1세, 조선 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약 35세 이하로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송시열은 실로 대단한 장수를 한 것이죠. 그 죽음마저도 왕의 노여움을 사 사약을 받은 것이 원인으로,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백수 이상을 누렸을 겁니다.

송시열은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학자였고, 치열한 정쟁에서 살아남은 정치인이었습니다. 분명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법한데, 어떻게 그렇게 건강관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사약을 마시고도 버틸 정도로 말입니다. 그 답은 평소 송시열의 생활습관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과연 그의 생활습관에는 남들과는 다른 어떤 비범한 요결(要訣)이 존재했던 것일까요? 지금부터 알아봅니다.

정력이 불끈, 생동력이 발끈

‘건강왕’ 송시열이 가장 철저하게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정기(精氣)의 바른 유지였습니다.

우선, 송시열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 조선에 전해진 담파고(淡婆姑, 담배의 옛말)는 그야말로 물 건너 온 신상(?)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침이나 해소, 천식 등 기관지 질환에 좋다는 근거 없는 속설이 나돌면서, 흡연은 실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왕족이나 양반들은 담배를 연초(煙草), 남초(南草)라 부르며 일종의 풍류로 즐겼기 때문에, 이름난 양반들은 자신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담배를 기호품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송시열은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평생 태우지 않았으며, 술과 여자 역시 멀리했습니다. 이른바, ‘유흥 보기를 돌 같이’ 한 것인데요. 결과적으로 이처럼 절제된 생활이 체내에 정기를 가득 차게 하여 평생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송시열은 여든이 다 돼서도 머리칼에 윤기가 흘러 제자들의 탄복을 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조선의 왕들인데요. 앞서 조선의 왕의 평균 수명이 46.1세라고 했습니다. 조선의 왕은 당대 최고의 의술과, 최고의 음식과, 최고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그 까닭을 살펴보면 꽤 흥미로운데, 조선시대 왕들의 사망 원인 중 상당수가 바로 정기의 오남용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최고의 성군으로 손꼽히는 세종의 사망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성병이었으며, 예종은 약관의 나이에 복상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38세의 나이에 승하한 성종은 주색을 즐겨 기력이 쇠해진 것이 사망 원인이 되었으며, 명종 역시 지나친 방사로 34살의 나이에 운명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과 케어가 뒤따르더라도 스스로 정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오래 사는 것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인 것입니다.

 

소식(小食), 오키오키~ 오키나와!

다음 송시열의 건강비결은 바로 소식(小食)입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소식이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의 비결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은 불과 30,40년이 채 되지 않았죠.

송시열은 평생 소식하는 습관을 잘 유지했으며, 밤늦게 음식을 먹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비유하면 야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인데, 현대 식품영양학에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야식을 먹지 말고, 저녁밥도 가급적 5~6시 사이에 먹는 것이 좋다는 점에 비춰볼 때 송시열은 건강할 수 밖은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고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송시열에겐 이보다 조금 더 특별한 건강유지 비결이 있었습니다.

기국차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양반

송시열 건강유지 비결의 핵심 요소는 바로 구기자와 국화였습니다.

예부터 구기자(枸杞子)는 신장(腎臟)과 간장(肝臟)의 기를 보하고, 그 기능을 개선해 정기를 바로잡는데 효과적인 식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구기자 열매는 약용(藥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기력을 보하는 한약에는 대부분 사용되는 약재입니다. 비타민A, 비타민C 등 각종 비타민류와 무기질이 풍부하고 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어, 몸의 정기(정력)을 보할뿐 아니라, 눈을 맑게 하고 근육과 뼈, 허리를 튼튼하게 하며, 노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아울러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꼽히는 국화 역시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데요. 국화는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으며, 건강유지의 핵심인 면역력을 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국화 역시 말려서 한약재로 사용되는데, 열을 낮추며, 해독, 간기능 개선에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송시열은 구기자와 국화 모두를 즐겼습니다. 그가 생전에 매일 같이 마셨다는 차가 바로 이 두 가지를 섞어서 만든차인 기국차(​杞菊茶)입니다. 바른 생활습관과 기국차 한잔의 여유, 어떻게 건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특히 구기자와 국화는 모두 신장과 간장의 기능 개선에 효과적인데요. 아시다시피 신장과 간장은 우리 몸의 해독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임을 생각해 볼 때, 아울러, 사약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가 비상(砒霜)이나 초오(草烏), 생금(生金), 생청(生淸), 부자(附子) 등 (때에 따라서는 치료의 목적으로 처방되기도 하는 약재입니다.) 독성이 강한 약재였음을 감안할 때, 어떻게 송시열이 사약을 마시고도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송시열은 사약을 한 사발 마시고도 멀쩡했고, 두 사발 마시고도 멀쩡했습니다. 오죽하면 숙종의 어명과 더불어 사약을 가져온 금부도사가 제발 죽어달라고 애걸하는 지경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고 할 정도였으니… 결국 송시열은 입안에 상처를 내고 세 번째 사약을 마시고 나서야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 비결은, 노오오력!

사실 송시열을 비롯한 윤선도(85세), 이익(83세). 정약용(75세) 등 당대의 유학자들 가운데에는 장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학문을 연마하면서 자연스레 한의학적 지식 역시 많이 습득하여, 이를 삶에 응용해 건강을 관리 및 유지하고 장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최고의 웰빙 라이프를 살다간 장수왕 영조 역시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건강 관리에 매우 신경을 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한의학 좀 아는 왕이었던 셈인데, 과도한 영양 섭취를 멀리 했으며, 채식위주의 식사,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지키는 바른 생활습관으로 조선시대 왕 평균수명의 두 배에 가까운 83세까지 살았습니다.

결국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은 건강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바로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무병백세(無病百歲)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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